[pub.chosun.com]마라톤을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는 이유

우리의 삶은 저 아득히 먼 초기 조상들 시절부터 숲과 산과 들판을 헤치고 다니는 것이 일상의 변하지 않는 삶의 모습이다. 요즘도 강북에서 강남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데는 정해진 노선이 없다. 일직선으로 지하철이나 차량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이길 저길 들락날락하면서 마음 가는 데로 가도 된다.

그러나 주자들의 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발로 가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도로를 따라 직선에 가까운 노선을 택해야 시간과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많이 줄일 수 있다. 가능하면 경치 좋은 코스를 택해 멀리 돌아가고 꼭 필요할 때만 걷거나 잠시 쉰다.

장거리 달리기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아픈 발과 욱씬거리는 팔다리, 궂은 날씨와 피로, 실망감과 지루함 같은 것을 묵묵히 견디면서 계속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 때로 전부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고생을 주자들은 으레 그렇다고 차분하게 혹은 웃으며 넘길 수 있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현실의 상황이나 마음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하고 참고 넘어가는 것 뿐이다. 그렇게 참을 만큼 참으면 결국에는 모든 인생이 좋은 시절을 맞게 된다. 편안함과 쾌적함, 그리고 신선함이 어우러진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더 나은 시절은 오고야 만다는 의미다.

인생이 당연히 나에게 좋은 시절을 열어 줘야 한다고 여기고 엄벙덤벙 살다가는 쓰라린 실망만 맛보게 되는 것과 똑 같다. 하지만 세상이 나나 나의 계획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 선한 사람들에게조차 나쁜 일이 일어나며 나 같은 사람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실제로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조금 더 나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릴 수 있다.

우리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보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예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좋은 시절도, 나쁜 시절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점이다. 달리기가 힘들어지거나 근육이 쑤시거나 쥐가 나거나 발이 아프거나 기운이 빠지거나 기분이 처지거나 할 때마다 만트라처럼 속으로 나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운동이 끝나고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위로고 용기고 또한 희망이다. 지나온 모든 시련과 고난을 즐겁고 뿌듯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되고, 몸을 혹사시켰던 그 긴 도로가 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그런 고생과 땀과 고통이 없었다면 훌륭한 맥주 한 잔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게 된다.

한 그릇으로 떼우는 밥이 주는 맛, 질감, 풍미, 뱃속이 든든해지면서 드는 은근한 만족감에 더해, 지치고 탈진한 몸 속 세포 하나하나가 에너지와 자양분을 쭉쭉 빨아들이는 듯한 숭고한 기분 속에 근육과 마음을 재충전되는 황홀감까지 느껴진다.

마라톤 자체가 인생살이의 축소판이라 하는 이유다. 역경과 위로, 고생과 휴식, 고통과 즐거움이 끊임 없이 오락가락 반복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인생에서 지속적인 행복은 불가능하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고통에서 이따금 숨 돌릴 짬을 얻는 정도가 바로 행복의 실체다. 그렇게 기나긴 고통이 변해 잠깐의 환희로 다가온다.

주자들이 끊임 없이 달리기를 통한 모험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설령 엘리트 선수가 아니라도 나 자신이 지닌 꿈과 야망은 재고 따지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법한 의구심을 모조리 없애버릴 만큼 힘이 세며, 주자들의 패기와 신념이야 말로 진정한 무기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이동윤, 2017-03-07 오후 4: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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